반대 없는 회의실
by Diana L.
“이견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매주 경영회의에서 이렇게 묻는 대표가 있다. 그는 진심으로 묻는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묻는다. 다만 반대가 나오면 “그건 이미 검토했어요”라는 답이 준비돼 있고, 동의가 나오면 회의가 빨리 끝난다. 직원들은 이 패턴을 오래전에 학습했다. 이제 그 회의실에서 반대는 나오지 않고, 대표는 “우리 팀은 손발이 잘 맞는다”고 믿는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1972년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집단사고(Groupthink)다. 그가 분석한 대표 사례가 피그스만 침공이다. 케네디 행정부의 참모진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만장일치의 압력 속에 대안 검토를 생략했고 결과는 참사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역사학자 슐레진저는 훗날 “그 중요한 논의에서 침묵을 지킨 것을 두고두고 자책했다”고 썼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나쁜 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리는 메커니즘이다.
침묵이 능력이나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확인돼 있다.
밀리켄 연구팀의 2003년 연구에서 직장인 85%가 조직에 중요한 문제를 알면서도 상사에게 말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이 꼽힌 이유는 “부정적으로 보일까 봐”였다. 구글이 2년간 180개 팀, 250개 변수를 분석한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최고 성과 팀을 가른 첫 번째 조건은 재능도 연차도 아닌 심리적 안전감, 즉 틀린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이었다.
AI 시대에 이 문제는 더 커진다.
AI 도입처럼 낯선 결정일수록 “잘 모르니까 일단 가만히 있자”는 침묵이 늘어난다. 진짜 몰라서 또는 모른다는걸 들키지 않으려고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AI 자체도 기본값이 동조라서, 사용자의 생각에 맞장구치는 경향이 연구로 확인돼 있다. 조용한 회의실에 동조하는 AI까지 더해지면 반대 없는 조직이 완성된다. 반대로 쓰면 AI는 꽤 괜찮은 악마의 대변인이 된다. “이 결정이 1년 뒤 실패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라고 반대를 주문하는 것이다. AI는 반대를 시켜야만 반대한다.
회의실의 침묵은 합의의 증거가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 반대가 나오는 회의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데 반대할 리더는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조직 전체가 기억한다. 한 번의 “그건 이미 검토했어요”가 열 번의 “편하게 말씀하세요”를 지운다. 직원의 침묵은 소극성이 아니라, 그 기억에 근거한 합리적 선택이다.
그래서 AI 시대에 심리적 안전감의 값은 더 올라간다. AI는 정보와 관점을 무한히 공급한다. “AI에 물어보니 이런 반론도 있더라”는 말은 정면 반박보다 꺼내기 쉽고, 반대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준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사람이고,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결정하는 것도 사람이다. 도구가 늘어도 마지막 관문은 리더의 반응이다.
리더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최근 한 달 사이, 반대 의견을 낙인 찍었는가,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였는가?”
SOURCES
Janis, I. L. (1972). Victims of Groupthink. Houghton Mifflin.
Milliken, F. J., Morrison, E. W. & Hewlin, P. F. (2003). An Exploratory Study of Employee Silence.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40(6).
Google re:Work. Project Aristotle.
Edmondson, A. C.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