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결정은 왜 늘 마지막에
by Diana L.
오전 회의에 다섯 건이 올라온다. 세 건은 그 자리에서 정리되고, 남은 둘은 “좀 더 보고 결정하자”로 넘어간다. 저녁쯤 되면, 처리 목록의 끝에 그 두 건이 남는다. 여섯 시가 넘어가면 말 수가 줄어든다. 한 건은 통과하고, 한 건은 “다음 주에 다시 보자”가 된다. 다음 주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대표는 중요한 안건이 결국 모두 처리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안건이 하루의 가장 끝으로 밀린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오랫동안 등장했던 개념이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다. 그 배경에 자주 인용된 것이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이다. 1998년 바우마이스터 연구팀은 네 건의 실험을 통해 이를 제시했다. 초콜릿을 참고 무를 먹은 참가자들은 이어진 퍼즐을 더 빨리 포기했다. 여기서 ‘의지력은 근육처럼 사용하면 소모된다’는 설명이 나왔다. “중요한 결정은 오전에 하라”는 조언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저녁의 결정이 나빠지는 이유를 사람 내부의 소진에서 찾는 사고방식도 여기서 힘을 얻었다. 그런데 이후 연구들은 이 설명에 상당한 의문도 제기했다.
2021년 36개 연구실이 사전에 등록한 설계에 따라 참가자 3,531명을 검증한 연구에서, 각 연구실은 자기통제를 소모시키는 두 가지 절차 중 하나를 실행했다. 확정 분석은 효과를 찾지 못했고(d=0.06) 베이즈 분석은 의지력이 닳지 않는다는 쪽을 네 배 강하게 지지했다. 결정 피로의 대표 사례로 자주 인용되던 가석방 심사 연구도 2016년 재분석에서는 판사가 휴식할 직전에 오래 걸릴 사건을 새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일정상의 선택만으로도 비슷한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음이 제기됐다. 즉,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판단이 나빠졌다고 보지 않아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퇴근 삼십 분 전에 무거운 파일을 새로 여는 사람은 없다. 열면 끝을 봐야 하고, 끝을 보고 나면 쉬는 게 아니라 뻗는 것이 되니까.
이런 패턴은 결정의 순간에 반복된다.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안건을 “컨디션 좋을 때” 보겠다며 미룬다.
AI가 검토안과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하루에 조직이 처리할 수 있는 안건의 수는 늘어나지만, 최종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의 수와 시간은 한정돼 있다. 의사결정의 공급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판단의 용량은 거의 그대로인 것이다. 규칙은 더 늦게 따라온다. 델로이트가 24개국 IT·사업 책임자 3,2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조사에서 에이전트형 AI의 위험을 관리할 성숙한 거버넌스를 갖췄다고 답한 기업은 21%였다. 다섯 곳 중 네 곳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컨설팅 회사의 자기보고 조사라는 한계는 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AI의 배치는 빠르고, AI가 만들어낼 결정의 흐름을 관리하는 규칙을 만드는 속도는 느리다. 하지만 반대로 사용하면 AI는 이 문제를 줄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안건을 하루의 몇 번째에 검토할 것인지, 어떤 종류의 결정은 언제 올리지 않을 것인지, 무엇을 먼저 검토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정해두고 그 순서를 일관되게 지키는 일은 사람보다 시스템이 잘한다.
AI는 우선순위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우선순위가 옳은지는 계산으로 나오지 않는다. 난이도에 따른 우선순위가 조직의 성과에 좋은가 하는 문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뒤로 밀린 안건이 결국 가장 늦은 시간에 열리는 패턴은 인간의 습관이다.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은 결정을 더 빨리, 정확하게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결정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리더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했는지, 반복되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SOURCES
Baumeister, R. F., Bratslavsky, E., Muraven, M. & Tice, D. M. (1998). Ego Depletion: Is the Active Self a Limited Resour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5), 1252-1265.
Vohs, K. D., Schmeichel, B. J. et al. (2021). A Multisite Preregistered Paradigmatic Test of the Ego-Depletion Effect. Psychological Science, 32(10), 1566-1581.
Glöckner, A. (2016). The Irrational Hungry Judge Effect Revisited.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11(6), 601-610.
Deloitte (2026). AI Agents Are Scaling Faster Than Their Guardrai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