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맥락
by Diana L.
주간 회의가 끝날 무렵 대표가 영업팀장에게 말했다. "요즘 고객 이탈 원인 좀 정리해 줘요." 팀장은 이틀 동안 고객관리 시스템에서 지난 1년 치 해지 데이터를 뽑아 월별 이탈률과 업종별 해지 사유를 정리했다. 보고서를 넘겨받은 대표는 첫 장에서 손을 멈췄다. "아니, 지난달 나간 거래처 두 곳 얘기잖아요. 다음 주 투자사 미팅에서 그걸 어떻게 설명할지 정해야 하는데. 당연히 그 얘기죠." 두 거래처가 계약을 끝낸 뒤로 대표는 그 건으로 임원 회의를 세 번 열었다. 팀장이 들어간 회의는 없었다. 팀장의 보고서는 받은 지시에 빠짐없이 답하고 있었다.
1989년 경제학자 콜린 캐머러, 조지 로웬스타인, 마틴 웨버가 이 현상에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 번의 회의로 두 거래처 이야기를 이미 다 알고 있던 대표는, 팀장이 그 배경을 모른다는 것을 인지했을까?
펜실베이니아대와 시카고대 연구팀은 와튼스쿨 학생 한 그룹에게 여러 회사의 보고서를 주고 한 해 동안 낼 이익을 예측하게 했다. 다음으로 다른 그룹에게 같은 보고서와 함께 실제 이익을 보여 주고, 첫 번째 그룹이 평균 얼마로 예측했을지를 맞히게 했다. 두 번째 그룹은 실제 이익이 보고서에서 짐작되는 것보다 높았던 회사라면, 첫 번째 그룹도 높게 예측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정답을 아는 두 번째 그룹은, 정답을 모르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그쪽으로 기울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연구팀은 돈이 걸린 상황에서도 지식의 저주가 사라지는지 시험했다. 예측할 때마다 첫 번째 그룹의 실제 평균을 알려 주며 얼마나 빗나갔는지 확인시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정답을 아는 학생들이 서로의 짐작에 돈을 걸고 거래하게 하자 빗나간 정도가 절반쯤으로 줄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상태를 상상하지 못한다.
연구팀은 이 저주가 사람들이 "자기 전문성을 남에게 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이 저주는 잘 고쳐지지 않을뿐더러, 아는 것을 나누는 일을 가로막는다. 지식의 저주에 걸리면 내가 아는 것을 남들도 대체로 알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아는 것을 남에게 전하기 어려워지고, 더 아는 쪽은 굳이 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대표가 두 거래처 이야기를 지시에 넣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리더 한 사람의 이 어려움이, 지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조직 전체에서는 어느 정도일까.
2025년 갤럽이 발표한 조사에서, 미국 근로자 약 8만 명 가운데 "회사가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안다"에 강하게 동의한 사람은 46%였다. 2020년 3월 56%에서 10%포인트 내려간 수치다. 직원 둘 중 한 명은 자기가 무엇을 기대받는지 분명히 안다고 답하지 못했다. 갤럽은 직원들의 이런 기본적인 필요를 관리자들이 점점 채워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대를 정한 쪽이 분명히 있는데도, 받는 쪽 절반에게는 그 기대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지시를 받는 쪽에는 두 부류의 수신자가 있다. 인간, 그리고 AI다.
2026년 카네기멜런대 연구팀은 AI가 말하지 않은 조건을 얼마나 알아서 지켜 주는지 실험했다. 「날씨가 나쁘면 주의 문구를 덧붙일 것」처럼, 굳이 적지 않아도 지켜 주길 바라는 조건들이다. 연구팀은 AI 기업들이 공개한 지시문 등에서 이런 조건을 모은 뒤, 같은 일을 시키면서 조건을 적었을 때와 뺐을 때를 비교했다. 말하지 않아도 AI가 거의 매번 알아서 지켜 준 조건은 열에 넷 정도였다. 나머지는 적어 줬을 때보다 눈에 띄게 덜 지켜졌고, AI 모델이 새 버전으로 바뀌면 더 쉽게 무너졌다.
리더에게 당연한 기준일수록 말로 나오지 않고, 말하지 않은 기준은 전달되지 않는다. 지시 한 줄을 두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은 깊이도, 방향도 다르다. 지시가 엉뚱하게 돌아오는 것은 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주는 쪽이 자기만 아는 맥락을 서로 아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고민한 결정일수록, 그 고민 가운데 얼마가 지시에 실려 내려갔는가. 리더는, 우리 팀이 자신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SOURCES
Camerer, C., Loewenstein, G. & Weber, M. (1989). The Curse of Knowledge in Economic Settings: An Experimental Analysi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7(5), 1232-1254.
Gallup (Harter, J., 2025-01-13). U.S. Employee Engagement Sinks to 10-Year Low.
Yang, C., Shi, Y., Ma, Q., Liu, M.X., Kästner, C. & Wu, T. (2026). What Prompts Don't Say: Understanding and Managing Underspecification in LLM Prompts. Findings of the Association for Computational Linguistics: ACL 2026, 9072-9101.